미국에 ‘베타(b8ta)’라는 회사가 있다. 2015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으로 전 세계의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 22개를 미국을 중심으로 운영 중이다.
베타는 제품을 전시해 놓고는 있지만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판매하는 점포로 오프라인 유통의 미래상을 제시하며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베타 매장은 천장에 약 20대의 특수 카메라를 설치, 이를 통해 고객의 움직임을 분석 및 수집하고, 직원과 고객의 대화를 통해 얻은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제조업자에게 제공한다.
방문 고객을 분석해 상품 검증
최근 오프라인 점포는 체험형 점포, 옴니채널 등 다양한 전략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는 온라인 쇼핑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켰고 오프라인 매장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프라인 점포를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닌 ‘데이터를 수집하는 장소’로 활용하는 사례는 오프라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힌트를 던져준다.
일본에서도 최근 물건이 아닌 소비자의 행동 데이터를 파는 점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츠타야 서점을 운영하는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CCC, Culture Convenience Club)이 만든 ‘츠타야 가전’이다.
CCC는 2015년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가전’이라는 콘셉트로 츠타야 가전을 오픈하였고, 2019년에는 ‘츠타야 가전 플러스’라는 차세대형 쇼룸을 선보였다. 츠타야 가전 플러스는 언뜻 보면 다양한 최신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가전 양판점과 비슷해 보이나 실제로 제품 판매로 발생하는 매출은 얼마 되지 않는다(정확한 수치는 비공개).
츠타야 가전 플러스에서는 ‘OPTiM’이라는 회사가 개발한 AI 카메라를 설치, 고객의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고객을 연령, 성별 등으로 세그먼트한 후 해당 상품 앞에서 어느 정도 서 있었는지, 제품을 어떻게 조작했는지 등의 고객 행동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제조사에 제공한다. 물론 방문 고객에게는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미리 알려주고 있으며, 분석한 데이터에는 개인정보가 포함되지 않도록 처리해서 제조업체에 전달한다.
카메라를 통한 행동 분석만이 아니다. 츠타야 가전의 점원이 고객들로부터 듣는 목소리도 제조업체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예를 들어 고객이 “조작 버튼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기 어렵다”라는 의견을 말하면 점원은 즉시 이를 제조업체에게 전달한다. 제조업체가 사전에 고객으로부터 주로 어떤 내용의 의견을 듣고 싶은지를 지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품 1개당 매월 평균 7천개의 행동 데이터와 약 50건의 고객 의견이 수집되며, 제조업체가 지불하는 비용은 상품 1개당 월 30만엔 정도이다. 고객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는 대가로 얻는 수익이 츠타야 가전 플러스의 주된 수익원이다.
제조업체의 주된 목적은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소비자에 관한 이해를 얻어 제품 개선에 이용하거나 제품이 더 잘 팔리게 하기 위함이다. 오프라인에서 얻은 데이터를 온라인 판매에 활용하는 기업들도 많다고 한다. 츠타야 가전 플러스에서는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대형 가전 제조사를 포함한 약 90개사가 100개가 넘는 상품을 전시하고 고객의 반응을 들었다.
츠타야 가전에 출점한 어느 IT 회사 관계자는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고 고객 수요의 변화도 빨라지고 있다. 어떤 고객이 어떤 상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분석해 상품 콘셉트 검증에 사용하고 싶다”고 전했다.
마케팅에 활용하거나 제품 개선에 이용
츠타야 가전뿐만이 아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쇼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작년 가을에 연달아 개업한 시부야 파르코와 시부야 스크램블스퀘어에서도 이러한 쇼룸을 만날 수 있었다.
시부야 파르코 내에 위치한 ‘부스터 스튜디오(BOOSTER STUDIO)’ 또한 데이터 수집에 특화된 점포이다. 시장에 출시되기 전의 시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어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얼리 어답터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시부야 스크램블스퀘어에는 기간 한정(2019년 11월 28일~12월 25일)으로 ‘복스타(boxsta)’라는 점포가 운영되었다. 복스타에서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개발한 IoT 기기 약 25개 품목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 상품 지식에 관해 교육을 받은 전문가가 고객들에게 상세히 설명을 하면서 고객이 새로운 제품을 체험하도록 돕는다.
복스터 또한 매장 내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상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영상과 음성으로 취득, 이 데이터를 분석해 제조사에게 제공한다. 제조사는 마케팅에 활용하거나 제품을 개선하는데 사용한다. 복스타는 데이터 수집을 위한 쇼루밍(showrooming) 점포를 연내 사업화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한시적으로 점포를 운영해 사업성을 판단했다.
오모테산도에 2019년 2월 기간 한정으로 오픈한 ‘아답터(adpt)’는 생활에서 바로 사용 가능한 실용적인 제품들이 주로 선보였다. 스마트폰의 앱으로 유명 바리스타의 레시피를 다운로드 받아 가정에서 재현할 수 있는 블루투스 커피 메이커, 자율 신경의 상태를 측정해 자신만의 영양보조제를 만들 수 있는 기기, 종이에 쓴 필기가 그대로 디지털로 저장되는 스마트 펜 등이 전시되었다. 얼리 어답터가 아닌 일반인들도 많이 방문했기에 제조업에 있어서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듣고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오프라인에서만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
오프라인 점포가 온라인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오프라인은 소비자의 행동을 깊게 이해하고, 온라인에서 수집할 수 없는 데이터를 모으는 장소로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실제로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의 정보가 주로 모인다. 위에 소개한 오프라인 쇼룸에서는 상품을 구입하기 전의 소비자 행동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오감을 사용해서 상품을 시험해보는 소비자의 행동에서 얻는 인사이트는 온라인에서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서두에 소개한 미국의 베타가 이번 여름 아시아에 진출, 도쿄에 점포를 오픈할 계획이다. 베타의 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일본 기업들도 다수 있었다. 베타의 일본 진출과 맞물려 제품을 팔지 않는 매장, 데이터 수집을 위한 쇼룸 형태의 오프라인 매장이 도쿄에 더 많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