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슈
등록일 :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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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국내 IT 스타트업들이 공통적으로 쓰는 앱이 있다. 생산성 도구 앱 '노션(Notion)'이다. 노션은 에버노트 같은 노트 앱, 프로젝트 관리에 쓰는 트렐로, 엑셀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 드롭박스 등을 모두 한 페이지에서 구현한 협업 도구. 마치 레고처럼 블록을 조합해 필요한 문서를 창조할 수 있는 앱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스타트업이 만든 노션은 국내외 2030 밀레니얼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 사이에선 '생산성 도구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노션은 어떻게 태평양 건너 한국 스타트업까지 사로잡았을까.
최근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진 이반 자오(Ivan Zhao) 노션 공동창립자 겸 대표(CEO)는 노션의 인기 비결을 '중용(中庸)'에서 찾았다. 자오 대표는 "올 여름에 한국어 버전 노션을 출시할 것"이라며 "미국 외 지역 최초로 한국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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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밀레니얼 입소문 타고 급성장
노션 가입자는 전세계 약 400만명이다. 노션 측은 "한국 사용자는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 규모"라고 밝혔다. 웹 데이터 분석 서비스 시밀러웹에 따르면 지난달 노션 웹·모바일 페이지에 접속한 한국 방문자는 130만명 정도다. 자오 대표는 "코로나 이후 한국 가입자가 60% 이상 증가했다"며 "한국어 버전을 준비하면서 접한 한국 사용자들의 다양한 의견에 우리 팀 전체가 고무되어 있다"고 밝혔다.
Q : 노션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뭔가.
A :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일하는 스타일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연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Q : 노션의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A : "사용자들이 주는 피드백은 이렇다. 아름답고 간결한 디자인, 쉬운 동기화 기능, 노트 이상의 올인원(All-in-one) 기능이 특히 사랑받는 것 같다. 한국에선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노션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입소문(바이럴)이 났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엔 재택근무(WFH)에 필요한 도구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Q : 한국에서도 노션을 쓰는 밀레니얼이 많아졌다.
A : "올해 우리 팀의 핵심 목표가 노션의 지역화였다. 한국은 우리의 첫 해외 공식 진출 국가가 된다. 최근엔 한국의 노션 사용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모아 여름에 출시될 한국어 버전에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 더 다양한 의견을 제안해 주면 적극 참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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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중심주의, "기술을 통한 예술 경험"
노션은 지난달 1일 벤처캐피탈에서 5000만 달러(약 600억원)를 투자받았다. 기업가치는 20억 달러(2조 4000억원)로 유니콘 대열에 들어섰다. 투자에 참여한 인덱스파트너스의 사라 캐넌 투자수석은 "노션을 사용한다는 건 기술을 통해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사용자들도 노션의 매력을 '디자인'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애플의 아이폰과 같은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한다는 것.
Q : 노션 디자인에 반했다는 사용자가 많다.
A : "제 전공은 디자인이지만 코딩도 할 수 있다. 지금 노션에는 저를 포함해 4명의 디자이너가 있는데 모두 코딩을 할 수 있는 이들로 구성됐다. 모든 프로젝트는 통합적 관점에서 우리가 정한 디자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진행될 수 없다. 노션의 DNA에는 디자인 중심의 문화가 있다."
Q : 노션의 간결함과 직관성은 애플과 닮았다는 평가가 있다.
A : "간결함은 노션의 중요한 가치다. 사용자들이 가볍고, 다루기 쉽다고 느껴야 한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노션을 생각하면 '연필'을 떠올렸으면 한다.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코딩할 줄 몰라도 누구나 직관적으로 마우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공예품(craft) 같은 도구를 만드는 예술가라 생각한다."
그는 노션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잡은 '흑백 펜 그림'의 탄생 비화도 풀어놨다. 친구인 로만 무라도프(디자이너)가 사무실을 찾던 차에 노션에 남는 공간이 있어 작업실로 빌려줬고, 그 대가로 부탁한 디자인이 지금 노션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됐다. 자오 CEO는 "때로는 우연한 선택이 뜻밖의 행운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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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션, 중용(中庸)의 절제를 닮았다
Q : 노션의 간결함에 철학적 기반이 있나.
A : "나는 중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캐나다로 이주했다. 동아시아의 유교적 개념에 익숙하다. 노션의 디자인과 개발 철학도 '중용'이라는 개념과 깊숙이 공명하는 면이 있다. 과도하게 기능을 강조하거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보수적으로 절제를 담았다. 화려함보다는 본질적인 문제, 많은 사람이 마주치는 공통적인 문제에 집중해 유용함을 제공하고자 한다."
Q : 동아시아에서 노션 선호가 특히 높다.
A : "공동 창립자인 사이먼과 일본 고도(古都) 교토에서 현재 노션의 기틀을 잡았다. 그때 얻은 사무실은 고풍스러운 공예품과 가구가 많았고, 교토라는 도시도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담고 있었다. 자기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며 균형의 가치를 배우기도 했다. 그때 배운 것들이 노션이 탄생하는데 영감을 줬다."
2013년 이반 자오 대표는 친구였던 사이먼 라스트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션을 창업했다. 처음 개발한 아이템은 '코드 작성 앱'이었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그는 "당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만 집중하고,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몰랐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라스트와 함께 2015년 일본 쿄토로 건너와 1년간 머무르며 지금의 노션을 구상했다. 그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하루 종일 코딩에 집중할 곳이 필요했다"고 일본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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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함', 작은 조직으로 코로나를 넘다
Q : 코로나19로 실리콘밸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A : "실리콘밸리에서 재능있는 수많은 인재가 해고되고 있다. 전례 없던 일이다. 노션은 40명 남짓한 작은 조직이어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10년 이상을 버틸 수 있는 자금이 있다."
Q : 글로벌 서비스를 하기에 인원이 너무 적지 않나.
A : "엔지니어팀 소속 개발자 4명이 지금 노션의 모든 것을 구축했다. 소프트웨어는 사용자가 폭증하더라도 인력이 많이 필요없다. 코딩하는 디자이너처럼 노션의 모든 직원이 2개 이상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구성된 점도 소수로 일할 수 있는 이유다. 디자인·개발·서비스를 나눠 생각하지 않고 연결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팀은 더 빠르고 유연해진다."
노션의 직원들도 다른 생산성 앱을 쓰는지 궁금했다. 자오 대표는 "원격근무를 해보니 여러 도움되는 도구가 많았다"며 "노션 뿐 아니라 슬랙, 줌, 피그마(디자인 협업툴), 슈퍼휴먼(이메일 관리솔루션) 등을 매일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Q : 투자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유가 있나.
A : "투자자를 싫어한다는 건 오해다. 노션이 실험하고 성장하기에 충분한 자금이 있었을 뿐이다. 2018년 이후 노션은 회사를 운영하기에 충분한 수익을 올려왔다. 초기 투자자와 관계는 원만하고 인력 채용 등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Q : 그런데 이번에 투자를 받은 이유는.
A : "올해는 코로나19로 세상이 급변했고, 기술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노션 직원들이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정감을 주기 위해 새로운 투자를 유치했다."
Q : 향후 노션의 방향은.
A : "노션은 코딩 능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협업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린다. 그동안 인류는 여러 어려운 문제를 협업을 통해 극복해왔다. 코로나가 대표적이다. 코로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소프트웨어는 없지만, 노션을 비롯해 다양한 소프트웨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구가 되고 있다. 삶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연필과 망치 같은 도구가 되겠다."